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미야기현 해안에서의 공포와 생존 기록
2011년 3월 11일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날이다.
나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기억일 것이다.
당시 나는 미야기현의 해안 근처에 살고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이 정해진 상태에서, 그 사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그 무렵부터 큰 지진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장소에서도 "이제 곧 미야기현 앞바다에도 지진이 올 거야"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진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올 거면 와라는 마음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다.
지진 당일은 근무가 있어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14시 26분, 흔들림이 시작되었다. 다들 지진에 민감해져 있었기 때문에 피난은 신속했다.
내 옆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는 특히 민감해서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제일 먼저 "지진이야!" 라고 외치며 회사 주차장으로 도망가던 분이라, 그날도 가장 먼저 도망치셨다.
지진을 얕보던 나도 혼자 남아 있을 수 없어서 함께 대피했다.
다들 주차장에 모였는데 흔들림은 멈추지 않았다.
"좀 기네~"하고 한가롭게 이야기 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세상이 확 바뀌었다.
쿵!
엄청난 땅 울림과 함께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거대한 흔들림이 닥쳐왔고, 비명이 터졌다.
주위 건물은 마치 접시에 엎은 푸딩처럼 흔들리고 삐걱거리며, 그 자리에서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아, 드디어 미야기현 앞바다 지진이 왔구나!'라고 느꼈지만, 금세 그 생각은 공포로 지워졌다.
큰 흔들림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지구가 흔들리고 있다.
마치 지금이라도 땅이 무너져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진동.
땅다박에 웅크리고 있음에도 고층 빌딩 옥상에 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제발 멈춰라!"
그 흔들림은 정말 오랜 시간 계속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나 그렇게 느꼈다.
그 이후 아르바이트고 뭐고 할 수 없었고, 상사의 판단으로 바로 해산되었다.(퇴근)
집에는 아내와 한 살 남짓한 아이가 있었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나 연결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르바이트 장소와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서 무사한지 확인하려고 회사 로커(사물함)로 달려갔다.
로커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쓰러질 것 같지 않던 무거운 기계도 넘어져 있었고, 만약 대피하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전기도 없는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으로 짐을 꺼내 집으로 달려갔다.
도로로 나오자 눈앞에 펄쳐진 것은 본 적도 없는 대정체였다.
왜냐하면 신호등이 모두 꺼져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차량을 옆에 두고, 오직 집을 향해 뛰었다.
"괜찮아?"
집 문을 열자, 발 디딜 틈 없이 물건이 흩어져 있었고, "무서웠어~"라는 아내의 말에 그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집에 있어도 어쩔 수 없어서,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대기했다.
그때 내리기 시작한 굵은 눈을 이상기후처럼 느껴졌다.
【규모 8.9의 대지진. 침착하게 대피를. 진도 7....】
라디오 방송도 혼란스러웠는지 같은 정보를 반복하기만 했다.
그때 하늘에서 헬리콥터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지금 쓰나미가 오고 있습니다~ 높은 건물로 대피하세요!"
'에? 쓰나미?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반신반의하면서도 근처 지정 피난소인 중학교로 몸을 피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인파 인파 인파...모두 피난을 온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체육관이 아니라 건물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것도 3층이상.
이때 눈앞의 해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대참사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까?
정보원은 라디오와 휴대폰 인터넷뿐.
점점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촛불이 밝혀졌다.
지급된 비상식을 먹으며 밖을 바라보니, 멀리서 시커먼 연기와 새빨간 불길이 보였다.
아무래도 대규모 화재가 난 듯했다.
무력감과 "누가 좀 도와주세요~" 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정보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OO구 해안부에서는 수백 구의 시신이...】
【쓰나미로 막대한 피해 발생....】
믿기지 않는 정보에 주변 사람들도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다음 날, 피난소에서 나온 우리는 집 정리를 대략적으로 하고, 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도로는 역시 대정체,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아 조용히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오셔서 "우리 집으로 가자!" 라고 말하셨다.
이때만큼 가족의 고마움과 따뜻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본가로 피난한 이후로는, 라디오를 들으며 해가 지면 자고, 여진에 떨며 지내는 생활이었다.
전기, 가스, 수도가 모두 끊긴 상태였기 때문에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식량은 슈퍼에 줄을 서면 어떻게든 되었지만 목욕을 못 하는 건 의외로 괴로운 경험이었다.
며칠 못 씻으면 몸과 머리가 가려웠다.
그리고 지진 발생 약 2주 후,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전기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다.
전기 등 생명선이 복구되고 나서야, 점차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주변의 피해 상황을 들어보니, 우리 집 바로 근처 약 1km 거리까지 쓰나미가 닥쳤다고 한다.
해안에 동부자동차도로 라는 성토된 고속도로가 있었던 덕분에 피해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만약 그 도로가 없었다면 우리 가족도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연락해보니, 모두 무사하다고 해서 안심했다.
하지만 예전 직장에서는 역시 희생자가 있었다.
같은 영업소에서 일했던 N씨는 짐더미에 깔려 양쪽 다리를 분쇄골절을 당했다.
병문안을 갔더니 통증이 심해 힘들어보였다.
겨우 걷게 되긴 했지만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배송기사분들 중에도 두 분이 쓰나미에 휩쓸려 돌아가셨다.
두 분 다 친하게 지냈던분들이라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나는 내정되어 있던 직장을 잃었다.
이유는 지진 피해때문이었다.
건물이 쓰나미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진 전부터 거기서 일하고 있었다면 나도 위험했을 거라고 한다.
이번만큼은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면서 취업 활동을 이어갔다.
이 후, 새 직장을 얻게 되어 어떻게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지진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고, 그 마음의 어둠은 매우 깊다고 느껴진다.
집을 잃고, 추억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분도 있다.
함께 일하던 아르바이트 동료 중 몇 명은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되었다.
아내와 자녀 2명을 쓰나미로 잃고도 힘내던 분은 그 후, 자살해버렸다.
눈앞에서 쓰나미에 휩쓸리는 차와 사람을 목격한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자위대에 있는 친구의 말로는,
동일 자위대원이 참혹한 쓰나미 피해를 보고 정신 이상을 일으켰다고도 한다.
불경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으나, 해안부에서는 귀신을 봤다는 증언도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은 밤에 해안도로를 운전하다 눈앞에 사람 형체가 나타나서 급히 급정거를 해서 차에 내려 확인했지만 사람을 친 흔적은 전혀 없었고, 경찰에 연락하자 "요즘 그런일들이 많습니다!" 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복구 작업 중이던 어떤 사람은 볼일을 보려다 영감이 있는 동료가 "거기로 가지 마세요!" 라고 호통을 들었고,
또한 방풍림이 사라져 시야가 트인 해안에서 밤이 되면 많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는 목격담도 있다.
동일본 대진으로부터 14년이 지났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해안도 많이 정리되었지만, 상처가 남아 있는 지역도 여전히 많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모둔 영혼들이 평온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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